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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관음증입니다

by 미국사는 한국아줌마 2024. 5. 6.


"조이스, 자기네 집 2층방에서 어떤 남자가 우리딸 방을 계속 쳐다보고 있어요"

저녁준비를 하고있던 어느날 앞집에서 전화가 왔다. 불안하고 긴장된 목소리였다. 우리집에는 지금 내옆에 있는 강아지 말고 사람 한명이 더있다. 남편, 그리고 그는 남자다. 나와 강아지는 지금 1층에 있고 남편은 2층에 있다. 전화를 주신 그분도 너무 잘 알고있다. '어떤 남자' 라 함은 강아지와 사람 둘만 사는 우리집에서 사실 나의 남편이라는 것을.

한국사람이 드문 동네에 이사오면서 앞집에 한국분이 사셔서 반가왔다. 남편과 사별하시고 대학원 다니는 둘째 딸과 함께 사시는 아주머니는 나를 친근하게 대해주셨고 두 집 모두 강아지가 있어서 강아지산책을 하다 종종 만나게  되면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지냈다. 서로의 집에 들러 똑같은 구조인데도 내부 인테리어에 따라 완전 달라진  집 모습을 보면서 정보도 나누었다. 간호사로 일하시는 그분은 교대근무 때문에 집에있는 시간이 나와 잘 맞지가 않아 서로 연락해서 시간을 맞춰 종종 집에서 커피마시는 시간도 갖자고 전화번호도 나눴다.

"그럴리가요? 무슨 착오가 있을거예요. 기다리세요. 제가 확인해볼게요"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상대방은 분명 어렵게 전화한건데... 잠시 창문가를 스쳐 지나간걸로 전화하진 않았을텐데... 계단 7개를 급하게 올라가는 내 발소리보다 내 가슴에서 나는 소리가 더 쿵쿵거렸다. 그 방은 컴퓨터방으로 나보다 남편이 더 자주 사용하여서 남편의 옷가지들과 물건들이 있다. 거리상으로는 충분히 떨어져 있지만 앞집 2층 창문과 우리집 2층 컴퓨터방 창문이 마주 대하고 있다. 지금 이 사람이 그 방 창문가에 서 있다면 나는 전화로 듣게된 이 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방문을 열면서까지 내 안의 불안감을 부인 할 수 없었다. 불꺼진 방에 아직 남아있는 바깥 빛으로 비추어진 딱 남편 키 만하고 덩치도 엇비슷한 남자가 블라인드가 열려있는 창문 가까이 서 있었다. "에그머니나..."

남편이 외출해서 돌아와 겉옷을 걸어두는 목재 코트옷걸이였다. 일반 남자의 키만한 높이의 옷걸이에 남편의 옷들로 적당한 몸통을 만들고 옷걸이 중앙 정수리에 모자까지 걸쳐놓아서 영락없는 사람모양이었다. 앞집 한국 아저씨가 창문가에서 블라인드 사이로 오래도록 자신의 방을 주시하고 있다고 느꼈으니 딸이 기겁을 하고 엄마에게 말한 모양이다. 얼른 블라인드부터 닫고 옷걸이를 방한쪽으로 옮겨 놓았다. 희미한 바깥빛으로 비추어져 만든 그 실루엣이 저녁시간 아가씨방을 엿보는 응큼한 아저씨를 만들어 버렸다. 우습기도 했지만 일단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사실 안도의 숨을 쉬었다라는 그 자체가 기분이 영 찝찝한 경험이었다.

안방문을 열었더니 진짜 남자주인공은 침대에 덜렁누워 스마트폰으로 야구를 보다가 저녁밥 먹으라고 말하려 올라온줄 알고 즐거운 낮빛을 보였다. 옷걸이 때문에 관음증 오해를 받았으니 이야기를 전하는 내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옷걸이를 창가쪽에 두지말자고 하며 솔직히 나도 컴퓨터 방문을 열기까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고 하니 가자미 눈으로 나를 흘겼다. 이웃집에 바로 전화를 해서 안심시키고 오해를 풀었지만 젊은 여학생이 놀란것 이상으로 잠시지만 그 가족에게 관음증 남편과 그남편을 둔 아줌마였던 것에 아찔했다.

이웃집에서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더러면 (확인전화라기 보다는 신고전화였다) 남편은 진짜 관음증 환자가 되어 있을수도 있다. 그 오해가 풀어지지 못한채 젊은 아가씨의 창문 블라인드는  한동안 닫혀있을테고 그간 창문을 통해 교감했던 나무들과 꽃, 그 다른 색의 계절들,  수영장에서 소리치며 노는 아이들이 준 유쾌함도 사라질 것이다. 이웃에 대한 안전감은 배반당했고 정붙이고 살던 동네도 싫어질것이다. 그리고 떠도는 숫한 루머에 하나가 더 보태어져 지금껏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를일이다.

우리가 쉬쉬하며 주고받는 이야기들중 적지않게 이런식으로 생긴 오해나 잘못 전달된 루머일때가 있다. 옷걸이의 실루엣이 만든 오류에 우리의 직접 간접적인 부정적 경험이 반사적 반응을 하고 또 다른 오류를 만든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라게되고,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고쳐매지 말아야 하는데 하필 거기서 신발끈이 풀어졌으니 일단 매고 가다보니 이런일이 생긴다.  인공지능으로 목소리까지 만들어 사칭하여 은행송금까지 하게하고 쳇지피티 (ChatGPT)로 논문을 쓰고 그 놈들을 잡기위한  인공지능을 또 만든다고 하는 시대이다.

잠시 남편이 관음증 환자로 오해받은것쯤이야 아무일도 아닐 수 있다.  좋은관계라고 모두 영속할 수 없고 물흐르듯 만나고 헤어지게되고 또다시 만나게도 된다. 나도 소중한 인연인 누군가를 이렇게 오해하여 이제껏 풀지못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남도 나를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알고있는 것은 아닌지. 더좋은 쪽이든 그 반대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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