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40 부겐빌레아 (Bougainvillea) 캘리포니아에서 나를 감동시켰던 처음 꽃이 부겐빌레아였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간 교회 앞마당에 이름도 모르는 붉은 덩굴 꽃나무가 설렘과 낯섦에 쭈삣대는 나를 응원해 주었다. 쭉쭉 하늘높이 뻗어 올라간 팜츄리와 함께 캘리포니아를 캘리포니아로 느끼게 해 주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꽃나무이다. 브라질 원산으로 꽃말은 정열과 사랑이라고 한다. 붉은색만이 아닌 진홍색, 핑크색, 살구색, 노란색, 연두색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꽃들을 갖고 있다. 사실 이 꽃들은 꽃이 아닌 꽃싸개이고 그 속 앙징맞은 하얀 꽃술 같아 보이는 것들이 진짜꽃이다. 이를 진작에 알면서도 여전히 꽃싸개들이 꽃으로 보이는 건 남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나중에 집을 사게 된다면 담장을 이 꽃나무로 둘러야겠다고 그때 생각했다. 26년 전 일이다... 2024. 5. 23. 아카시아의 소환 한국서 과수원 하는 언니가 사진을 보내주었다잊어버렸던 나무, 아카시아사진과 함께 갑작스레 올라오는 향에숨을 깊게 들이마신다캘리포니아에선 본 적 없어 구박사에게 물어보니힌꽃의 이 나무는 "아카시 나무"라고아카시아 나무는 호주원산의 노란 꽃의 다른 식물이란다제 이름을 줄까 했더니 피차 머쓱해졌다그냥 아카시아로 하자하니 나를 수십년 전으로 데려갔다달달한 맛에 힌 포도송이 손에 든듯 그렇게 들고 친구들과 쪽쪽 빨았다오빠들을 쫓아 잡은 메뚜기를 강아지풀에 꿰어 들고 와 볶아 먹던 기억땅강아지라고 불렀던 갈색의 작은 곤충들을 연탄불에구워 먹던 기억붕어와 미꾸라지를 잡아온 날은붉은 고추장찌개 도마뱀이 아버지 중풍에 약이라고 손에 작대기를 들고 오빠들 얼굴이 벌게지도록 난리를 폈지만녀석들은 꼬리만 남기고 도망을 치.. 2024. 5. 12. 그냥 어느날 어린물고기가 나이 많은 물고기에게 물었습니다. "바다라고하는 그 멋진 곳을 찾고 있어요.""뭐어?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바로 이곳인데!" "뭐라고요? 어린 물고기는 대답했습니다.여긴 물이잖아요"애니메이션 영화, 소울 (Soul)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음악만이 삶의 이유와 목적이었던 조가 우여곡절 끝에 유명한 도로시 밴드에서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멋진 재즈피아노 협연을 마치고도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낄 때 도로시가 해준 이야기이다. 어느날, 이 짧은 도로시의 물고기 이야기가 내 뒤통수를 쳤다. 나 또한 그냥 "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쓴 물인 날도 많았다.특별한 재주가 없어서 대단한 꿈을 꾸며 용쓴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나또한 바다를 찾았었나보다. 서울시.. 2024. 5. 12. 남편이 관음증입니다 "조이스, 자기네 집 2층방에서 어떤 남자가 우리딸 방을 계속 쳐다보고 있어요"저녁준비를 하고있던 어느날 앞집에서 전화가 왔다. 불안하고 긴장된 목소리였다. 우리집에는 지금 내옆에 있는 강아지 말고 사람 한명이 더있다. 남편, 그리고 그는 남자다. 나와 강아지는 지금 1층에 있고 남편은 2층에 있다. 전화를 주신 그분도 너무 잘 알고있다. '어떤 남자' 라 함은 강아지와 사람 둘만 사는 우리집에서 사실 나의 남편이라는 것을.한국사람이 드문 동네에 이사오면서 앞집에 한국분이 사셔서 반가왔다. 남편과 사별하시고 대학원 다니는 둘째 딸과 함께 사시는 아주머니는 나를 친근하게 대해주셨고 두 집 모두 강아지가 있어서 강아지산책을 하다 종종 만나게 되면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지냈다. 서로의 집에 들러.. 2024. 5. 6. 놀마의 아이리스 정원 강아지 밍키를 데리고 산책하는 길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너무 아파서 꼼짝도 못 하는 날을 빼고는 밍키와 항상 그 집 앞을 지났다. 주인들의 취향대로 심긴 꽃나무, 과일나무까지, 곱게 깎여진 잔디와 각양 식물과 꽃으로 다듬어진 집들을 지나며 만나보지 못한 집주인들의 성향과 그들의 일상까지도 대충 가늠하곤 하였다. 이 동네 이사 들어와 처음부터 오랫동안 놀마의 집은 항상 닫혀있었고 그 정도의 넓은 땅이라면 꽤 멋스러운 정원을 가꾸었을 법한데도 놀마의 집 주위는 풀하나 나지 않은 굳고 단단한 땅이었다. 2-3년 된듯하다. 어느 날 그 집 문이 열려있었고 80대 정도로 보이는 미국 할머니가 그 굳은 땅을 파고 흙을 고르고 있었다. 큰 관심 없이 밍키와 나는 그곳을 매일 지나며 나이 든 여주인의 수고에도 별 차.. 2024. 4. 19. 12월에 잃어버린 것들 어른들은 사뭇 분주해하며 색다른 세상을 만들었다그 흥에 겨워 고단해 잠들어 버린 우리는눈 비비며 대문밖 신비롭고도 놀라운 세상을 보았다12월 겨울밤 찬기운에 붉어진 어른들의 얼굴들어둠속 촛불과 성탄노래와 함께 나오는 입김은흩뿌리는 눈발과 묘하게 어우러졌다별을 세던 그 손으로 우리는 흔들리는 촛불을 센다하나 두울 세엣... 그 수를 다하기전메리 크리스마스설레임과 그리움은 그렇게 하나 더 만들어졌다 새벽노래는 잡혀갔고어른들 입김도 헛꿈이 되었다아이들은 전화기를 손에 쥐고여물지 않은 손가락으로 혼자서 온세상을 휘젖는다우리는 연말대목을 잡느라 분주히 밧데리 촛불을 사들였다캘리포니아 겨울은 춥지도않다12월에 잃어버린 것들메리 크리스마스소리내지도 못한다 2023. 8. 23.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반응형